목회칼럼 1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목회칼럼

Total 991건 1 페이지
  • 991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2.2026 2026년 9월 13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감옥이라고 하면 높은 담장과 쇠창살, 굳게 닫힌 철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현대의 감옥은 반드시 담장 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감시의 질서가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올 때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는 모습을 주목했고,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이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스스로 죄수가 되어 가는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 불안하고 고립될 수 있다는 현대인의 역설은, 감옥이 때로 외부의 벽보다 마음 안에 더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사도행전 12장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보여 줍니다. 헤롯의 권력이 그를 붙잡고, 군인들이 지키며, 쇠사슬과 철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감옥 밖의 또 다른 장면을 함께 보여 줍니다. 어느 집에 성도들이 모여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헤롯과 맞설 권력도, 감옥을 무너뜨릴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는 말씀은 사도행전 12장의 긴장을 한 문장에 담아냅니다. 한쪽에는 감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감옥문과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Read More
  • 990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2.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토) 오늘 끝까지 걸어가라
    [특별묵상 5]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토) 오늘 끝까지 걸어가라 (단 12장 9–13절) 
    Read More
  • 989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2.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금) 죽음 너머의 부활을 바라보라
    [특별묵상 5]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금) 죽음 너머의 부활을 바라보라 (단 12장 1–3절) 
    Read More
  • 988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2.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목)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특별묵상 5]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목-아침)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단 11장 31–35절) 
    Read More
  • 987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9.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수) 죄를 끝내고 의를 이루시는 메시아
    [특별묵상 5]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수-아침) 죄를 끝내고 의를 이루시는 메시아 (단 9장 24-27절) 
    Read More
  • 986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8.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화) 인자 같은 이가 오신다
    [특별묵상 5]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화- 아침) 인자 같은 이가 오신다 (단 7장 9-14절) 
    Read More
  • 985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8.2026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월) 무너지지 않는 나라
    다니엘서에서 만나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 (월) 무너지지 않는 나라
    Read More
  • 98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6일 목회 칼럼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항해 지도라도 바다가 변했는데 옛 항로만 고집한다면 새로운 길을 제대로 항해하기 어렵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가 변한다고 복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언제나 익숙한 방법과 경계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로 성도들이 흩어졌을 때, 사람의 눈에는 교회의 위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를 흩어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복음을 흩어 보내고 계셨습니다. 복음은 마침내 여러 민족과 문화가 만나는 안디옥에 도착했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몇 사람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성경은 그 이유를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설명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읽는 교회는 유행을 가장 빨리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께서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계시는지를 분별하고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곳으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라고 생각했던 일을 새로운 길로 바꾸시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지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가 아니라 “이렇게 달라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계십니까?”입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예수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할 길은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Read More
  • 983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6일차 | 말라기 3-4장2026년 9월 5일(토) 아침묵상본문: 말라기 3장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말 3:7)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에서 하나님과 멀어진 백성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가지고 있었고 제사도 드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말 3:7).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책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인을 멀리 쫓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던 마음과 삶의 방향을 돌려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그런데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라고 묻습니다(말 3:7). 자신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무감각의 가장 위험한 모습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계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필요와 소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말 3:8-10). 이 말씀의 핵심은 단순히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정말 첫째 자리에 계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계획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납니다.말라기 3장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사자”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말 3:1). 그러나 그분이 오시는 날은 단순히 기쁨의 날만은 아닙니다.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말 3:2). 그분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두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아십니다. 작은 순종도 기억하시고 은밀한 기도도 들으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회복은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말씀이 멀어졌다면 말씀으로 돌아가고, 기도가 식었다면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돌아가십시오. 우리가 돌아갈 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은 심판만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아버지이십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삶이 주님에게서 멀어졌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영적인 무감각을 깨우쳐 주시고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계획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가장 먼저 모시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날마다 회개하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82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5일차 | 말라기 1-2장2026년 9월 4일(금) 아침묵상본문: 말라기 1장하나님은 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말 1:8)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다시 건축했고 예배도 회복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신앙은 점점 형식적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드렸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는 식어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하여 먼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말 1:2). 말라기의 모든 책망은 이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버리기 위해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어려운 현실이 계속되자 하나님의 사랑마저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예배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하나님께 눈먼 것과 저는 것과 병든 짐승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런 것을 총독에게 드려도 그가 기뻐하겠느냐는 것입니다(말 1:8). 사람에게도 드리기 어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자신들은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문제의 핵심은 제물의 품질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 1:6)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주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심을 안다면 그분께 아무렇게나 나아갈 수 없습니다.우리도 하나님께 남은 것을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루의 시간을 모두 사용하고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관심과 열정을 다른 곳에 모두 쏟은 뒤 남은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시간이나 헌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먼저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습니다(롬 8:3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무엇을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받은 크고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말라기에는 놀라운 약속도 있습니다.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말 1: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 가운데 자신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실 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의 성취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남는 시간, 남는 마음, 남는 열정을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께 남은 것을 드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삶의 가장 좋은 것을 기쁨으로 주님께 드리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형식적인 예배와 습관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렀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남은 시간과 남은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귀한 마음과 시간과 삶을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81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4일차 | 스가랴 11-14장2026년 9월 3일(목) 아침묵상본문: 스가랴 14장구원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슥 14:9)스가랴서의 마지막 장은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궁극적인 승리와 회복을 보여 줍니다. 스가랴 14장은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공격받고 성읍이 큰 고난을 겪는 “여호와의 날”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에 처한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슥 14:3).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소망은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구원하시는 데 있습니다.스가랴가 바라보는 역사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나타나십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슥 14:9). 지금 우리의 눈에는 세상의 권력과 힘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한 나라와 권력자들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에 누가 진정한 왕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왕이십니다.스가랴의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오셨고(슥 9:9), 은 삼십에 팔리셨으며(슥 11:12-13), 찔림을 받으셨습니다(슥 12:10). 그리고 목자가 침을 받아 양들이 흩어지는 예언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슥 13:7, 마 26:31). 그러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때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왕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스가랴 14장에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흘러나가서”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로 흐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슥 14:8). 생명의 물은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확장될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복음은 오늘도 나라와 언어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그날에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심지어 말방울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귀가 새겨지고 일상의 평범한 솥까지 성전의 그릇처럼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슥 14:20-21). 이것은 거룩함이 성전이나 예배 시간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곳에서는 우리의 가정과 일터, 말과 행동, 관계와 선택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우리의 현실에는 여전히 고통과 갈등이 있고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서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에게 결말을 보여 줍니다. 역사의 마지막은 혼돈이나 악의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구원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결말을 알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죄와 죽음을 이기셨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관계와 계획 속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구원의 마지막은 우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오늘의 기도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눈앞의 현실과 세상의 권세를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된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관계와 모든 일상이 주님께 거룩하게 드려지게 하옵소서. 생명의 복음이 우리를 통하여 이웃과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시며, 마침내 주님께서 온 세상의 왕으로 나타나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80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3일차 | 스가랴 6-10장2026년 9월 2일(수) 아침묵상본문: 스가랴 8장하나님께서 회복하시면 슬픔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됩니다“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슥 8:2)스가랴 8장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약속을 보여 줍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아직 초라했습니다. 성전은 재건 중이었고 예루살렘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모습만 바라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며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슥 8:3).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은 건물이 다시 세워지고 경제가 회복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다시 거하시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될 때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 되고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불리게 됩니다.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회복의 모습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 노인들이 다시 앉아 있고, 거리에는 뛰어노는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슥 8:4-5). 전쟁과 심판으로 무너졌던 도시에서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노인들이 평안하게 살아갑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회복은 거창한 구호만이 아닙니다.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일상,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평범한 하루를 평안하게 누리는 삶도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그러나 당시 백성들에게 이러한 약속은 너무 크고 놀라워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어려워 보일지라도 내 눈에도 어려우랴”(슥 8:6).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의 약속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회복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그렇다고 하나님의 회복을 기다리는 백성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약속과 함께 분명한 삶의 방향을 주십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슥 8:16-17).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진실과 정의와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참된 회복은 우리의 환경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계까지 변화시킵니다.스가랴 8장에는 더욱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과거에 백성들이 지켰던 금식의 날들이 장차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슥 8:19). 과거의 슬픔을 기억하던 날이 기쁨의 날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고통을 끝내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의 기억까지 새로운 은혜의 이야기로 바꾸십니다.이 회복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이루어집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리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눈물과 죽음과 슬픔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은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아직 회복되지 않은 자리가 있습니까? 오래 기도했지만 변하지 않는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까? 현재의 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하나님께도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진실과 정의와 화평의 길을 걸으십시오. 하나님의 회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답습니다.오늘의 기도회복의 하나님 아버지,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일하시는 주님을 믿게 하시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삶의 자리들을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게 하옵소서. 제 삶 가운데 진실과 정의와 화평을 이루게 하시며,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게 하옵소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며, 오늘도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79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9월 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2일차 | 스가랴 1-5장2026년 9월 1일(화) 아침묵상본문: 스가랴 1장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 1:3)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포로 생활은 끝났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현실은 기대했던 것처럼 밝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황폐했고 성전 재건은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백성들의 마음에는 낙심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하여 가장 먼저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조상들이 걸었던 길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이전 세대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슥 1:4).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했고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대가 조상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여기에서 우리는 회개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던 삶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금 더 잘해 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회복은 행동 몇 가지를 고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데서 시작됩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로 돌아오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시고 받아 주시며 다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회개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스가랴가 전하는 회복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우리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초청도 분명합니다. 죄에서 돌이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형식이 되고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먼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해진 후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부분이 있다면 오늘 다시 돌아가십시오. 오래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자를 책망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품으시고 회복시키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한 걸음 하나님께 돌아설 때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다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삶이 주님에게서 멀어졌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저의 죄와 완고함을 깨닫게 하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제 힘으로 자신을 고치려 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오늘 즉시 순종하게 하시고, 저를 기다리시며 다시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78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06.2026 (2026년 8월 3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1일차 | 학개 1-2장2026년 8월 31일(월) 아침묵상본문: 학개 2장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여러 어려움과 반대에 부딪히면서 공사는 오랫동안 중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하나님의 집보다 자신의 집과 생활을 먼저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 1:5).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들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다시 성전 재건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새롭게 지어지는 성전이 과거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전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눈앞에 있는 성전은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학 2:3).우리도 종종 현재를 과거와 비교합니다. 과거에 더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믿음이 더 뜨거웠던 것 같고, 교회가 더 활력이 있었던 것 같고, 삶도 더 안정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영광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에게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학 2:4). 성전의 크기나 화려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된 영광은 건물의 크기나 외적인 성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임재하시는 데서 시작됩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당시 백성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눈앞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는 건물의 화려함을 넘어 더 크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크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참된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으며, 이제 성령께서 믿는 자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중 영광은 건물의 화려함을 넘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가리킵니다.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순종을 통하여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비교하며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과의 크기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전보다 작아지고 약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까? 과거의 모습과 비교하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우리가 보기에 작은 시작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새로운 영광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하여 우리가 보지 못하는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는 현실과 과거의 모습만 비교하며 쉽게 낙심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지금의 모습이 작고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말고 오늘 맡겨 주신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하시며,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더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고, 오늘도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ad More
  • 977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Aug 29.2026 2026년 8월 30일 목회칼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에는 나라와 도시를 나누는 수많은 경계선이 있지만, 실제 땅 위에는 그런 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지도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비슷한 지도가 있습니다. 민족과 언어, 세대와 문화, 사회적 배경과 생각의 차이를 따라 “여기까지는 우리이고 저기부터는 다른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습니다. 문제는 그 선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지도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지도를 다시 그리십니다. 유대인 사도 베드로와 로마 백부장 고넬료 사이에는 민족과 문화, 종교와 정치의 높은 경계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는 천사를 보내시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보여 주시며 두 사람을 서로에게로 움직이십니다. 복음의 역사는 우리가 먼저 경계를 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경계를 넘어 역사하시면서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자신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시고, 그 은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넓으며, 우리가 그어 놓은 선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훨씬 큽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넘어가신 경계 앞에서 나는 아직 멈추어 서 있지 않은가?” 복음은 우리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무너뜨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만든 경계보다 언제나 먼저 움직이십니다. 
    Read More

검색